[매일경제] 정부 '電맥경화' 처방전…한전 독점 송전망 건설, 민간에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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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그동안 한국전력공사가 독점해온 전력망 사업의 문을 민간 기업에 연다. 한전이 천문학적인 적자에 허덕이는 데다 발전 자체보다 전력망을 제때 구축하는 게 중요해지면서다. 이미 민간 기업이 참여하는 도로나 공항 같은 대부분의 사회간접자본(SOC)처럼 전력망도 시장에 개방하겠다는 의도다. 23일 정부와 국회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다음달 초 발표할 '전력계통 혁신대책'에 이 같은 내용을 담는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번 대책의 핵심은 민간이 송전선로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정부는 직접 갈등을 중재하고 인허가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우선 민간 기업의 송전선로 사업 참여를 가능하게 할 예정이다. 지금은 한전이 사업 계획을 세우고 주민들과 협의해 송·변전설비를 건설하면서 전력망 구축을 도맡아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를 일정 부분 민간에 맡기겠다는 의미다.
정부는 대신 민간 기업의 사업 계획을 미리 받아 타당성을 검토한다. 국무총리 산하에 이른바 '전력망확충위원회'를 신설해 민간 기업의 개발 허가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도 거론된다.
대신 민간 기업이 구축한 설비는 한전에 귀속된다. 이는 민간 기업이 도로 등을 건설한 뒤 정부에 소유권을 넘기고 시설 임대료 등을 받는 '임대형민자사업(BTL)' 방식과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전력망을 민간에 개방하는 이유는 수도권에서 필요로 하는 전력량이 급격하게 늘면서 송전선로를 까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올해 100.8기가와트(GW)인 전력 수요는 2026년 110.4GW로 3년 만에 9.5%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송전선로 사업을 홀로 담당하는 한전의 재정 상태다. 한전은 올해 3분기 '반짝 흑자'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누적 적자는 약 45조원, 누적 부채는 204조원에 달한다. 송전설비 건설 물량이 급증하면 한전이 이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다.
'제10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에 따라 계획한 31개 전력망 사업 가운데 7건이 지방자치단체의 반대나 정부 인허가 등으로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해안에서 수도권을 잇는 송전선로 건설 공사가 대표적이다.
다만 민간 기업이 참여할 만큼 '당근'을 내밀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관련 내용이 담긴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검토 보고서에서 "시행사업자에게 보상이 적정한지에 따라 사회적 논란과 특정 사업자에 대한 특혜 시비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정부는 송전선로 사업의 환경영향평가를 간소화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또 선로 설비 주변 지역에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보상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정부는 혁신대책과 함께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통과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오는 29일 열리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이 법안을 논의한다.
[이새하 기자 / 홍혜진 기자]